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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천국 2020/05/04 21:42

이 블로그는 주로 일본의 도시전설, 괴담, 공포 등을 번역/재구성/수집/공개하고 있는
블로그입니다.

주로 일본 괴담 사이트들의 내용을 위주로 선택, 번역 후 재구성/첨삭하는 편입니다만
때때로 그 이외의 출처를 가진 게시물도 있습니다. 종종 우리나라의 도시전설이나 괴담도
올릴 예정입니다.

이용에 많은 즐거움 있으시길 빕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당신의 등 뒤에 계신 그 분은...


* 도시전설이란?

 곰곰히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그러나 왠지 누구나 들어본 적 있으며
 은근히 그럴 듯한, 개중에는 정말로 믿는 사람도 있는 괴담/뜬 소문/미신/농담.
 (ex:입 찢어진 여자, 소니 타이머 등)

* 전재/댓글에 대한 운영방침 : http://newkoman.tistory.com/notice/65

  * 2007/6/28 공지 추가 : 본 블로그는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됩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리라쨩

*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크게 화제가 된 암살 사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제 35대 미 합중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963년 11월 22일
(금요일) 현지시간 12:30(18:30 UTC)에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암살된 사건을 일컫는다.
 
당시 케네디는 딜리 플라자에서 카 퍼레이드를 실시 중이었고, 여러 발의 총탄을 맞아 치
명상을 입고 결국 사망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다음 세 가지 이유로 11월 22일의 달라스 유세를 결정한다.

1) 1964년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위한 민주당 선거자금 기부 모금을 위해,
2) 재선을 향한 선거활동을 위해,
3) 정치적으로 대립 중이던 텍사스의 민주당 유력 멤버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달라스 교외의 달라스 트레이드 센터에서 연설을 실시하기 위해, 자동차 퍼레이드는 러브
필드 공항에서 딜리 플라자를 포함한 다운타운을 통과하기로 계획되었다. 당시 케네디가
탑승한 차량은 1961년형 링컨 컨티넨탈, 오픈탑 개조 리무진이었다.

대통령의 동승자는 아내인 재클린 케네디를 비롯하여 텍사스 주지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백악관 비밀요원 등이었다.

그러나 당시 케네디가 탑승한 그 차량은 방탄장비가 되어있지 않은 차량으로, 방탄 장비를
갖춘 대통령 전용차량 확보계획은 1963년 10월에서야 추진되어, 당시까지는 따로 방탄장비
를 탑재한 전용차량이 존재하지 않았다.

달라스의 도처, 특히 자동차 퍼레이드 루트에는 케네디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이들의 플랭
카드가 많이 걸렸는데 심지어 11월 22일 당일에는 케네디 비판자들에 의한, 케네디를 수배한
다는 내용의 부고장이 실린 전면광고까지 게재된 바 있다.


암살

당시 케네디 일행의 차량행렬은, 케네디가 몇 명의 수녀, 아동과 악수를 위해 2번 멈춘 것
이외에는 거의 아무 일 없이 퍼레이드 루트를 통과했다. 큰 길에 들어선 리무진 앞으로 한
남성이 달려오기는 했지만, 보안요원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12시 30분.

케네디를 실은 리무진이 텍사스 교과서 창고(Texas School Book Depository)에 가까이
다가간 후 천천히 방향을 돌려 그 창고를 벗어나기까지.

그 69초 사이에 케네디가 저격당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암살 당하는 순간의 리무진 속도는 9~13마일이었다. 그를 향한 세 발의 총탄 중 첫 발은
빗나갔지만 다른 한 발이 케네디를 명중, 관통하여 텍사스 주지사까지 다치게 하였고, 마
지막 한 발은 케네디의 머리 부분에 치명상을 입혔다.

케네디 저격에 관해서는 그 무수한 음모론과 당시 저격 상황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지만,
일단 케네디가 2발 이상의 총격을 받았고, 마지막 총탄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다, 라는 사
실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모든 이가 인정한다.
 
첫 발이 발사된 이후 군중들 사이에서는 여러 반응이 일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첫 발을 폭죽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텍사스 주지사가 "My God, they are going to kill us
all!"하며 부상을 입은 직후 저격사실을 외쳤고 그제서야 차량 운전자는 상황을 깨달고 신
속히 반응했다. 당시 그 운전자는 재빨리 뒤돌아 보고 소리치는 주지사와 대통령을 확인
했는데, 그는 그 덕분에 머리 부분에 치명상을 입은 케네디를 육안으로 실제로 목격한 유
일한 사람이 되었다.

케네디는 총격을 받은 후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으며, 리무진은 곧바로 속도를 높여 딜리
플라자를 벗어나 파크랜드 메모리얼 병원으로 향했다.


부상자

대통령의 리무진에 동승했던 텍사스 주지사는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그의 부상은
케네디가 입은 최초의 부상 직후에 발생했는데, 케네디를 관통한 총탄에 의해 부상을 입은
것이 유력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부상 직후 주지사의 부인은 그를 무릎 위로 엎드리게 하고 감쌌는데, 그것이 가슴의 총상
(상처입은 폐로 공기가 유입되고 있었다)을 막아 결과적으로 그를 살린 조치가 되었다고,
의사는 증언했다.

제임스 터크(암살을 목격한 관중 중 하나)는, 케네디가 총격된 위치에서 전방 대략 80미터
지점에 서있었지만, 발사탄의 파편에 의해 오른쪽 뺨에 상처를 입었다.


암살기록

안타깝게도 저격 순간의 퍼레이드 행렬이 통과하는 지점은 그다지 중요한 지점이 아니었
기에 라디오 및 TV 모두 현장을 라이브로 중계하지 않았다. 행렬 후미의 미디어를 제외하
면 거의 모든 보도 기관은 트레이드 센터에서 케네디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딜리 플라자에서의 암살 현장은 무음 8mm 필름에 26.6초간 기록되었다. 아마츄어
카메라맨이었던 에이브라함 자프루더가 찍은 그 필름은 훗날 자프루더 필름(Zapruder film)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훗날 케네디 암살에 관한 연구에 많이 이용되었다.

자프루더 필름은 영화「JFK」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총격 당시 대통령 머리 부분의 파편
이 뒤로 흩날리는 장면 등에 의해 치명적 사격의 방향이 전방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분석되
었다. 그 후 재클린 영부인이 동요한 모습으로 차량 후방으로 움직여, 날아간 대통령의 뇌
파편을 주운 모습 등이 확인되었다.

한편 당시 이 비디오는 FBI에 의해 몰수된 바 있으며, 내용의 일부 편집이 이뤄졌다. (훗날
FBI가 인정)


범인의 체포와 사살

리 하비 오스왈드는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케네디 암살 80분 후 현장 근처의 극장에서
체포되었으나 그날 밤 케네디 암살용의로 재체포되었다. 암살범으로 체포된 오스왈드는
그러나 사건 이틀 후인 11월 24일 오전, 구치소로 이송을 준비하던 중 달라스 경찰본부의
지하통로에서 잭 루비라는 마피아에 의해 사살되었다. 참고로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 중
이었기 때문에 수백만에 이르는 미국인이 라이브로 그 순간을 목격했다.

루비가 오즈워드를 사살한 이유는「남편이 암살되어 슬퍼할 재클린 부인과 그 아이들을
위해서」,「슬픔에 찬 재클린이 법정에 서는 일을 막기 위해」라는 황당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 확실한 이유도, 어떻게 경찰 관계자, 혹은 매스컴 관계자도 아닌 루비가 경찰서
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도 끝내 풀리지 않았다. (이러한 미스터리 덕분
에 케네디 암살에 관한 '뒷배경이 있다'라는 음모론은 많은 탄력을 받았다)

또한 저격 직후부터 루비가 오스왈드의 행동을 수시로 뒤쫒았던 사실이 여러 인물을 통해
증언되었다. 하지만 루비는 사건에 대해 4년 후, 암으로 옥중에서 죽기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케네디의 사망

케네디를 담당한 파크랜드 병원의 관계자는 이미 도착한 상황부터 케네디는 사실상 사망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오후 1시, 심박이 정지하였고 대통령의 사망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텍사스 주지사는 그 날 두 번의 긴급수술을 받았다.

오후 2시가 지난 후, 무장한 보안 요원들에 의해 케네디의 사체는 에어포스 원으로 반송되었
다. 부통령이었던 린던·B·존슨은 케네디의 2대 뒤의 자동차를 타고 있었지만, 대통령의 죽음
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승격했다. 존슨은 러브 필드 공항의 에어포스 원
기내에서 이륙 전 취임 선서를 실시했다. 에어포스 원이 워싱턴D.C. 에 착륙한 후, 케네디의
사체는 검시를 위해 베데스다 해군 병원으로 반송되었다. 검시는 3명의 군의관에 의해 실시
되었다. 그리고 몇 장의 X레이 사진이 검시를 위해 촬영되었으나 그 사진들은 공식기록에서
빠졌다.


검시 사진

검시 사진은 이하의 URL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jfklancer.com/MDsmall.html
http://www.jfklancer.com/Backes.html



암살 후, 반응

총격 그 직후부터 케네디의 죽음이 공표될 때까지 큰 혼란과 공포가 일어났다. 당시는 냉전
시대였기 때문에 총격이 미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의 일부인가, 부통령은 무사한가 등이 확
인되지 않아 문의전화가 쏟아지는 바람에 워싱턴 D.C는 전화망에 약 1시간 가량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케네디 암살 뉴스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고, 뉴욕을 시작으로 많은 남녀가 울음을 터뜨
렸다. TV보도를 보기 위해 백화점에 사람들이 몰렸고 기도를 올리는 이들마저 있었다. 일
부 학교에서는 하교령이 내려졌고 텍사스 주 및 텍사스 사람들에 대한 반감, 폭력 행위가
보고되기도 했다. 또한 암살 직후 소련은「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라며 국제표명을
실시하는 등, 그 충격은 컸다.

케네디의 검시가 끝나고 그 관이 국회의사당으로 옮겨지자 밤낮에 걸쳐 약 25만명의 사람이
조문을 했다. 그 추모행렬은 거의 40블록에 이르렀다. 또한 케네디의 추도식은 즉시 전 세계
적인 규모로 행해졌다. 미국 정부는 케네디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뤄 11월 25일 전국적 규모
로 치뤘다. 장례식에는 소련을 포함한 92개국 220명의 고관이 참가했다. 추도식 후 관은 매
장을 위해 알링턴 국립묘지로 옮겨졌다.


암살의 배경

정치적 인물에 관한 암살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가장 먼저 의심되는 것은 그 암살의 배경
이다. 암살의 이유와 암살자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으나, 아직끼지도 확실한 결론은 나
오지 않았다. 그 주된 원인은, 증거품의 공개가 정부에 의해 부자연스럽게 제한되어 있거
나 대규모 증거 인멸로 보이는 조치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잭 루비가 오스왈드를 죽인 것은 암살사건의 진상은폐를 위함이라는 등의 음모론이
많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또한「군산 복합체의 사주를 받은 정부 주범설」,「마피아 주범설」,「소련 KGB 주범설」
,「피델 카스트로 주범설」,「망명 쿠바인 주범설」,「전 CIA 국장 알렌 덜레스 주범설」,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 주범설」,「대통령 자리를 노린 존슨 주범설」,「대통령 선거
에 패배한 닉슨 주범설」등, 오늘날까지 많은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가설 중 하나인「군산 복합체의 사주를 받은 정부 주범설」같은 경우, 케네디의 급진적인
베트남 철수 계획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해칠 것을 두려워 한 정부 내의 일부 세력이 대
통령의 경비를 약체화한 후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이다.


정부 측의 조사


두 개의 공식 조사가 있었으나 그 조사결과는 달랐다. 하나는 오스왈드의 단독범으로 결론
지었고, 다른 하나는 오스왈드의 공범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설은, 흔히 '론 건맨 음모'라고 불리는데, 이 단독범행설의 경우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주요한 문제점

* 위원회의 조사결과 오즈왈드는「사격의 명수」처럼 일컬어졌지만 해병대 시절의 그의
   기록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 자프루더 필름에 따르면 총격은 전방에서의 것으로 보이나, 그 경우 후방에 있었던 오스
   왈드의 단독범행설은 곧바로 부정된다.

* 오즈왈드가 저격한 것으로 여겨지는 교과서 빌딩의 창가에는 나뭇잎이 방해가 되어 저격
   하기가 어렵다.

* 정부측 보고(워렌 위원회)에서는 5초 사이에 3발을 발사했다고 보고하고 있으나 오스왈드
   가 사용한 볼트액션 방식의 총으로는 5초 내에 3발을 발사, 2발을 명중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보통 사격의 경우 1,2,3회에 걸친 사격이 있을 경우 뒷 차례로 갈수록
   조준 문제로 인해 명중이 더욱 어려워지나, 이 사건에서는 가장 정확한 사격이 오히려 3번
   째 총탄이었다. 이는 훗날 전문가가 실시한 실험에서도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 결정적인 문제 중 하나로, 대통령과 그 동승자가 입은 다른 피탄 지점(약 5개)은, 단 1발의
   총탄으로는 도저히 그 궤적의 설명이 불가능하다.

* 오스왈드가 경찰서 내에서 살해되는 사태 자체가 설명이 안 된다. (경찰서 내에는 외부의
   무기를 반입할 수 없다)

* 증거품 공개가 정부에 의해 2029년~2039년까지 제한되어 있다.


이상의 증거 등에 의해, 현재, 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 암살을 정부가 관여한 음모설에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 외의 의문점

* 사건 당일, 달라스 시장의 지시로 인해 갑자기 퍼레이드 코스가 변경되었다. (관례대로
   라면 역대 대통령은 직선 코스를 퍼레이드 하는 것이 보통이나, 케네디는 차의 속도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는 우회루트를 주로 달리게 되었다)

* 원래대로는 반드시 대통령 부근에 있어야 할 비밀정보기관원들이 뒤로 물러나 있었다.

* 긴급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차량 속도를 올리는 것이 원칙이나, 오히려 속도를 더 떨어
  뜨렸다.

* 사체를 한번 도둑 맞았다. 또한 칼날에 의해 오른쪽 머리 앞 부분의 상처가 더해졌다.

* 검시를 맡은 의사는 탄환 전문 검시의가 아니었다.

* 증거품으로 제시된 탄환이 절대 진짜가 아니다. 총탄은 뼈에 맞으면 변형되는 것이 보통
   이나 총탄에는 상처 하나 없다. (7.35mm×51 총탄이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도 불명).
 
* 자료는 미국 공문서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공개가능 시한은 2039년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도 이미 자료 대부분이 분실된 상태라고 한다.


목격자

암살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기록한 이는 뜻밖에 자푸르더 뿐만이 아니다. 비록 자푸르더에
비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지만, 저격 순간을 필름으로 촬영한 이는 그 이외에 3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사건 발생시 딜리 플라자에는 32명의 프로/아마츄어 사진
작가들이 있었다.


미공표 문서

암살 순간을 자프루더보다 가까이서 필름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신원 불명의 여성이
한 명 있다. 그녀는 연구가들에 의해 바브슈카 레이디라고 불리는데, 다른 필름이나 사진
에는 분명히 그녀가 필름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다.


참고 : 위키페디아 - 케네디 대통령 암살
         http://en.wikipedia.org/wiki/John_F._Kennedy_assassination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프론티어적인 정신을 갖추었다고 일컬어지며 많은 사랑을 누린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당시 전 세계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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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음모론(conspiracy theory)

역사상의 주요 사건들이나 현실의 중요한 일들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의 음모나 술수에
의해 발생했으며,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에 의하여 그 목적, 내용이 은폐되고 있다고
믿는 사상.

미국 정부와 관련된 음모론

현재, 현대사의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거의 모든 주요 사건에 대하여 음모론이 존재하며
미국 정부와 같은 강력한 조직에 대해서는 특히 매우 광범위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 FEMA 음모론

미국의 재해구호조직 FEMA의 본질은 뜻밖에 재해구조조직이 아니고, 민간인을 학살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음모론. 재해구호조직인 FEMA가 재해구호와는 상관없는 전차나 기관총
등의 차량병기와 중화기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그 근거로서 제시되며, 지하에 강제 수용소
를 건설하고 있다고 일컬어진다.

또한 자국민에 대한 학살의 경우 살의가 무디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인 용병을
대량으로 채용했다는 설도 있다.


* HAARP 음모론

고주파 활성 오로라 조사 프로그램(HAARP)은 사실 오로라 관측 시스템이 아니라, 지진병기
또는 기상병기라는 음모론이다.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절대 다수의, 과학에 관한 음모
론적 이론/기기에는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이 등장한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나로 손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의 위명과 많은 업적 그리고 미완의 이론들은 과학은 물론이고 무수
한 음모론의 형성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그 니콜라 테슬라 자신에 관한
음모론도 다양하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는 그가 암살당했다는 설이다)의 전자파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지진이나 이상기상은 자연현상 으로 가장할 수 있으므로, 미국 정부가 타국 정부를 협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설이다.


HAARP 음모론 - 1. 지진 병기

전자파로 그리고 지하수를 가열, 팽창시켜 지진을 일으킨다는 설이다.

HAARP 외에도 지면에 깊게 구멍을 파고, 활단층 위에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떨어뜨려
지진을 일으킨다는 설도 있다. 세계 최대의 건설회사 베크텔 사와 관련되었다는 설도 매우
유력한 음모론 중 하나이다.

일본의 한신 대지진과 동남아의 쓰나미도 이 병기에 의해 일어났다는 설이 있다.


HAARP 음모론 - 2. 기상 병기

해수면에 전자파를 쬐어, 기상 변화를 일으킨다는 설. 엘리뇨, 라니냐 모두 이 병기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HAARP 음모론 - 3. 기타

전자파에 의해 마인드 컨트롤을 실시한다는 설이다. 그 외에도 전리층을 가열하여 핵병기에
대한 방패로 검토된 바 있다는 설도 있으며, 미국 이외에도 중국, 러시아도 같은, 혹은 더욱
강한 위력의 병기를 가졌다는 설도 있다.


* 전자 투표 시스템 음모론

미국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표 시스템의 경우 시스템 그 자체에 조작이 가해졌다는 음모
론이다. 2000년, 2004년의 미 대통령 선거에서 이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실제로 플로리다
주의 경우 일부 표가 어떤 후보에 투표해도 조지·W·부시에 대한 표로 개표되는 오류가 발견
되기도 했다.


* 록히드 사건 음모론

인기와 수완을 모두 갖췄던 일본의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가 실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록히드 금품비리수뢰 사건에 대한 음모론으로, 당시 중국,소련,아랍 각국에 대해서
접근하던 다나카 총리를 실각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와 국제 석유자본, 자민당 내부의 소수
파가 공모한 사건이라는 음모론.


* 유전자 조작 음모론

미국 정부가 인간과 다른 동물의 유전자를 조합한 생물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 음모론. 초
창기에는 말, 고릴라, 개 등의 동물과 인간의 조합이란 형태로 유전자 조합이 이뤄지고 있
다는 식의 다소 황당무개한 음모론이었으나 근래에 와서 실제로 문제가 제기된 곡물에 대
한 유전자 조작 문제와 인간 복제 문제 등과 얽히면서 점차 세련되고 다양한 형태의 음모
론으로 발전 중.


* 중앙은행 음모론

각국의 중앙은행은 공공기관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간기업이며, 통화발행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음모론. 주로 잉글랜드 은행, 일본 은행, 연방 준비 은행,
유럽 중앙은행 등이 그 주요 대상으로 지목된다. 그 근거로는 경영실태가 주식회사로 운영
되고 있는 것 등으로 제시된다.


* 연방 준비제도(FRB) 음모론

연방 준비제도를 구성하는 각 연방 준비 은행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완전한 민간
기업이며, 연방은행은 외부 감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 부분까지는 사실이나, 이 연방준비
은행이 국민들로부터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음모론이다.

연방 준비제도에 반대한 미국 대통령은 링컨, 케네디 등이며, 결국 그 대가로 그들은 암살을
당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 매스컴 음모론

미리 정치가의 약점을 조사해뒀다가, 그가 지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를 실각시킨다는
음모론. 정치가 뿐만 아니라 기업가 등도 그 대상으로 곧잘 지목되며 그러한 방법을 통해
그들을 부리는 어떤 세상의 상위조직이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음모론.

음모론의 함정

"음모론은 많은 경우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답을 제공해주지만, 그것이
 진실로 증명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며 때때로 음모론에 너무 심취하게 되면 뻔
 히 눈에 보이는 결과나 보편적 상식조차 부정하는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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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TAG 음모론
* 특정 조직이나 집단에 대한 무지와 안티가 양산해내는 무수한 악성루머

제 아내의 사촌(38세 독신)은 이상한 페미니즘 여성으로, 최근 행동이 이상하다고 합니다.
한때는 결혼제도 붕괴와 난교사회(웃음)로 아이의 공유화를 주창했다고 합니다만 최근엔
한동안 얌전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와서는 차남(1살)을 양자로 갖고 싶다며 떼를 부리길래
아내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차별이 없는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라면서 차남의 페니스를 절제하여 신남성
(의미불명)으로 길러내 장차 동료(대학시절의 극렬 패미니즘 친구들)의 딸과 교배(?)시켜
성폭력이 없는 인공수정사회의 주춧돌을 만들고 싶다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지만, 계속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그러니까 아이들 달라고 하길래
무서운 생각이 들어 쫒아버렸다고 합니다.

단순한 미치광이인지, 아니면 컬트적인 페미니즘 조직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미치광이
여성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킵시다!

루머의 양산과 확산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나뉜다. 무지, 그리고 안티. '잘 모르기
때문에' 어이없는 루머를 지어내고, 또 역시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황당무개한 이야기를
있을 법 하다며 믿게 되며, 또한 거기에 어떠한 악의가 더해지면 악성 루머의 탄생이 조성
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데...

이미 일찌기 패미니즘 운동이 불어닥친 서구권과는 달리 비교적 근래에 접어들어 패미니즘
운동이 확산된 일본의 경우(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그에 대한 사회의 저변과 이해가 부
족하여, 이러한 악성 루머가 조성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패미니즘을 성대결 구도로 몰고간 일부 극렬 패미니스트와 또 그 반대자들의 악의에
의한 패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반감은 이러한 루머의 조성에 아주 좋은 촉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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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헌팅

괴담천국 2008/08/24 16:16

시부야 역 앞의 교차로. 다른 사람들 눈은 신경도 안 쓰고 젊은 여자들 모두에게 말을 거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아가씨!」 ,「저기, 지금 한가해?」,「잠깐만!」
 
얼굴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옷은 한 20년 전쯤에나 유행한 것 같은 복고. 당연히 발걸음을
멈추는 여자도, 하다못해 눈이라도 맞추는 여자조차 없었다.

마침 나도 그쪽이 가던 길이라 횡단보도를 지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말을 걸어왔다.

「저, 차 한 잔 하자구!」
 
도대체 몇 년 전 대사야. 나는 곁눈질로 그 녀석을 살짝 보고는「방해하지마」하고 작게
말했다. 그 후 나는 친구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자리
에 앉았는데 내 앞 자리에는 놀랍게도 방금 전의 남자가 활짝 웃으며 앉아있었다!

그는 기쁜듯이 말했다.「너는 내가 보이는구나.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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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TAG 헌팅

1cm

괴담/공포/도시전설 2008/08/24 15:57

미술 선생님이 아직 학생 시절, 다양한 기재가 놓인 공구방에서 여러 명이 졸업작품 제작을
하고 있었다. (아마 3명 정도)

옆에서는 여대생이 거대한 전동 프레스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학생들이 졸업작품을 준비하다 피로로 쓰러지는 일은 흔한 일이었기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가간 선생님은 그러나 그녀가 기절한 것이 아니라, 공포와 당혹스러운 눈으
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보곤 순간적으로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눈이 닿자, 이번에는 선생님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 그녀
의 손가락이 모두 잘린 상태였던 것이다.

그녀는 아픔도 모르는 듯 정신없이 잘린 손가락을 찾기 시작했고 주변의 다른 친구도 당혹감
을 감추지 못하다 한참 후에야 구급차를 불렀다.

너무 예리하게 잘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잘릴 때의 마찰 때문인지 손가락에서는 거의 피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수술로, 찾아낸 손가락 중 큰 것은 다행히도 봉합할 수 있었지만, 나무와 함께 으스러진
작은 손가락 조각들은 끝내 붙일 수 없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1cm씩 짧아져버렸다고.

손가락 절단은 흔한 사고겠지만, 언제 들어도 무섭다. 그리고 그것이 실화일 때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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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친구와 함께, 쿄토에서 북쪽으로 차를 달리고 있었다. 
심야 시간. 새벽 1시를 넘겨, 근처는 민가가 드문 한적한 지방도로. 빨간 불에 차를 세웠는데
앞 차 트렁크가 조금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딱히 주의를 줄 일도 아니다 싶어서 그렇게 신경 안 쓰고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트렁크가 튀면서, 안에서 잠옷 차람의 남자가 굴러나왔
다. 중년의 야윈 남성으로, 입에는 재갈, 양손은 뒤로 묶여있었다.

일어난 그는 필사적으로 이쪽으로 기어왔고, 정말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필사적인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둘이서 놀라고 있자, 차의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둘이 나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남자의 눈 앞에서 스슥 권총을 꺼내 남성의 후두부를
내리쳤다. 남자가 축, 하고 쓰러지자 그 몸을 다시 트렁크에 밀어넣고는 확실히 닫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신호가 바뀌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달렸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지만, 뒷 차의 클락션으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경찰에 연락했다.

10분이 지나고 경찰차가 도착했을 때 본 그대로 설명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더이상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경찰서까지 가서도 설명을 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이후 한참을 주의깊게 뉴스를 봤지만 별로 그에 관한 것으로 짐작되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
고 당연히 나올 리도 없을 것이다.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지금도 믿
기 어렵지만, 이른바「어둠의 세계」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를 처음으로 실감한 사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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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제가 아직 고등학생이던,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토야마에 살고 있었습니다만, 당시
반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 요코는 학교를 그만둘지 말지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흔한 이야기로, 원인은 남자입니다. 명문 진학교를 다니던 료코였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서 친척도 없고, 고교 중퇴에 그다지 질이 좋지 않았던 연상의 불량
배. 당연히 그녀의 부모님은 둘이 사귀는 것을 결사반대했습니다.

특히 고3이 되어 수험시기에 접어들자 부모님의 반대는 더욱 더 심해져, 이제는 학교를 그만
두고 사랑의 도피를 할지 어떨지의 상황까지 온 차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것을 말리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그 날, 요코는 꼭 상담할 것이 있다
면서 답답할 때면 곧잘 갔던 해변가로 저를 불러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인 용무로 30분
정도 늦었습니다. 요코는 더는 기다릴 수 없었는지 없었고, 해변에는 그녀의 가방만이 덩그
러니 남아있었습니다.

두리번거리다 근처에 서 있던, 단골가게의 할머니에게 요코의 행방을 물어보자「요코? 조금
전에 왠 불량한 남자들하고 이야기하던데. 그 다음은 모르겠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방만 요코의 집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요코는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도피였겠지요. 끝내 그녀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고, 그녀의 남자친구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묘하게 신경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해변에 닿았을 때,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거뭇한 배가 저 멀리 보였습니다.
그 때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만....

얼마 전 북한으로 납북된 일본인 관련 뉴스들을 볼 때마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만약 그때 내가 그곳에 제 시간에 갔다면 현재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지나친 생각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요코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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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저는 15년 전, 어떤 빌딩의 경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빌딩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방범벨이 울렸기에 급히 뛰어나가자, 범인은 이미 창
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밤이었고 경황이 없던 터라, 저는 그저
검은 그림자 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외에는 그저, 아마 남자, 그리 살이 찐 체격은
아니다, 정도 뿐. 신장조차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일단 목격자였기에 경찰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만 경찰의
조사는 사실상 거의 유도심문이었습니다.

「범인은 파란 옷을 입고 있었지 않아?」

그런 거 몰라요, 아무 것도 모른다니까요. 그렇지만 너무나 끈질긴 경찰의 심문에 어느덧 전
경찰이 말하는대로 믿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범인은 푸르스름한 복장에다 40대의 보통 체격,
구두는 스니커즈...

곧 범인은 잡혔고, 나는 재판에서 경찰이 불러준 그대로의 범인상을 증언해버렸습니다.
분명히 말해 귀찮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무엇을 증언했는지도 지금은 제대로 기억이 안 납니다. 왜냐하면 그림자 이외
에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었던 두달 전, 한 남자의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OO(나)입니다」
「OO인가?」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세요?」
「정말로 OO인가?」
「네, 누구신가요?」
「너, 15년 전, 재판에서 거짓 증언 했었지? 각오해라」
 
저는 오늘도 잠이 안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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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

지금 이 이야기는, 지금부터 20년도 더 된 옛날 TV프로그램「위크엔드」에 소개된 사건
입니다.

쇼와 50년대(1970년대), 그 사건은 일어났다.
 
장소는 큐슈 지방의, 과거 한때 탄광으로 번창했지만 광산이 폐쇄된 이후 완전히 쇠퇴해버린
마을. 그 마을에서 한 남자가 농사일 도중 실수로 벌초기에 자신의 발가락을 절단당했다.

이런 사건이라면 농촌 마을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마을에서는 이상하게도 마을 사람들의 손발 결손사고가 빈발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손, 발, 귀, 눈을 다치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그 소문은 인근 도시와 마을에 퍼져
사람들은 그 마을에 뭔가 씌였다는 소리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마침내 보험 회사가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처음에 쓴 대로, 이 마을은 광부들이 활동하던 무렵에는 그들이 쓰는 돈으로 인해 나름대로
경기가 돌았지만, 폐광 이후 그들이 떠난 이후로는 침체 일로를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
나 그 마을 출신의 광부들의 경우에는 탄광 폐쇄에 대한 보상금과 공단 측의 퇴직금이 겹쳐
큰 목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하지만 뜻밖의 큰 돈을 손에 쥐게 된 그들은 그 돈으로 새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집을 쓸데없이 증축, 신축한다던지 집에 게이샤들을 초대해 논다던지, 가족을 모두 데리고
하와이 여행을 하는 등 흥청망청 낭비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그들이 그렇게 돈을 흥청망청 소모하던 시절까지는 어떻게든 마을의 경제가 유지되었
지만, 그들마저 돈을 소비해버리자 이제 마을의 경제력은 그렇게 결딴이 나고야 만 것이다.
돈을 모두 탕진한 그제서는 뒤늦게 다른 도시로 떠날 수도 없게 되었고, 생계를 잇기조차 어
렵게 된 폐광촌 주민들이 결국 취한 행동은····

그렇다. 보험금 사기였다.
 
돈을 계속 타내기 위하여, 그들은 보험에 든 자신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사고로 위장하여
훼손한 것이었다. 보험회사가 그 사실을 밝혀내고 사기죄로 고소할 준비를 진행하던 차,
급기야 충격적인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큰일났어요! 농사일 중에 잘못해서 솥에 갓난아기를 그만···」
 
드디어 그 건으로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역시 이미 수사는 하고 있었던 듯 하다) 결국
그 마을 사람들 거의 전부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사기, 범죄방조, 그리고 영아살해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상, 돈을 위해 그야말로 축생도에 이를 정도로 타락한 사람들의 마을,「손가락 절단 마을」
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뒷 이야기-

조사결과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솥에 자신의 아이를 빠뜨려 죽인 사건의 경우, 부부가
처음부터 사망보험금을 노리고「죽이기 위하여」아이를 임신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이란, 이미 그 자체가 지옥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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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라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