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는, 손녀인 내가 봐도 신사적인 분이셨다. 그러나 할머니 말에 따르면 전쟁에 징병되어 다녀온 이후로 많이 바뀌신 것이라고 했다.

술 담배를 일체 하지 않고, 도박이나 여색도 밝히지 않고 채식주의로 식습관도 변경. 그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후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셨다.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아마도 생활이 완전히 바뀔 정도의 지옥을 보고 오셨던 탓이리라. 할아버지는 전우의 이름을 새긴 위패 같은 것을 항상 집안에 모셔놓은 불단에 바치고 열심히 기도를 올리곤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였지만 80대 중반 무렵 치매 증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이른 아침, 큰 소리로「하낫, 둘! 하낫, 둘!」하고 구령을 붙이며 상반신을 벗은 채 집 주변을 달렸다. 그게 처음으로 기억한다.

어떤 때에는 낮에 싸이렌을 울리며「공습경보! 공습경보! 대피, 대피!」하고 집안을 떠들며 돌아다녔다. 어느 날 밤에는「등화관제! 소등, 소등!」하면서 집안의 불을 모조리 꺼버리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당시 그때는 엄청 놀라셨다고. 아무래도 그 증상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전쟁 당시의 행동 같았다. 예전의 할아버지의 온화함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큰 쇼크였지만, 그럼에도 집을 잃어버리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다만, 아들과 함께 내가 저녁식사를 친정에서 같이 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메뉴는 스키야키.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고기 요리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가족이 먹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한 적도 없었다. 함께 식사는 하지만 고기에 손은 대지 않을 뿐.

그때였다.

「너희들, 공양은 올리고 먹고있는거냐!」

갑작스런 큰 소리에, 식탁의 시간은 순간 정지한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투덜투덜 중얼거리며, 냄비에서 한 조각의 고기를 집어들고 입에 넣으셨다. 그리고 힘 없는 목소리로

「이건 어디 고기냐···?」

하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근처 정육점 이름을 말하자

「그런 것을 묻는게 아니야!」

하고 또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피가 쏠렸는지, 할아버지는 두 세번 가볍게 머리를 흔들더니 그대로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어머니가 따라갔지만 잠시 후 돌아왔다. 아무래도 언제나처럼 불단에 가서 기도를 올리시는 것 같았다. 그 후의 식탁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아들은 반 울상이었고.

반년 정도 후, 할아버지는 입원을 하셨고 결국 2년 쯤 후 돌아가셨지만 그 사이에도 몇 번인가 유사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치매 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보면

「뭘 드셨길래?」

라는 것이 자꾸 맘에 걸린다.

전쟁 당시의 정신 상태에 놓인 할아버지
식량이 극도로 부족했던 전쟁 중
공양을 올린 후에 먹는 고기
그리고 위패로 가서 기도

할아버지, 도대체 뭘 드셨습니까?

Posted by 리라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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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어디를 가던지 그 인근에는 반드시 신사나 절이 있다.

그리고 개중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져 방치된 곳도 적지 않다.
보통 일본인이라면 그 같이 버려진 신사나 절이 있으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는다. 일본인 특유의 종교관에 의한「외경심」이 본능적으로 접근을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일본에서의 생활이 오래되지 않은 한국인들의 경우는 다르다. 신사에 대한 거부감은 있을지언정 외경심이나 존경의 마음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에 대한 마인드 역시, 조선민족의 경우 단일민족이면서도「민족 신」을 갖고 있지 않은 매우 독특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때로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되는 결계를 가진 신사의 경내를 모르거나 괜한 호기심으로 범했다가 천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 사건도 그런 사건 중 하나이다.

 

어느 추운 겨울 날이었다. 나는 김씨의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신씨의 집을 방문했다. 신씨의 얼굴은 창백한 얼굴이었다. 김씨도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곧 정씨도 온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곧 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키지마 라는 이름의 그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제법 탄탄한 몸을 가진, 눈빛이나 분위기가 상당한 수행을 한 남자처럼 느껴졌다.


키지마는 손에 들고있던 서류 가방에서 낡은 흑백사진과 너덜너덜한 노트를 한 권 꺼냈다. 신씨도 테이블 위에 파일을 펼치고 몇 장의 칼라사진을 꺼냈다. 그들이 찍은 사진의 피사체는 같은 물건이었다.

그것은 3개의 발과 뚜껑이 있는「금속제 항아리」였다. 그 항아리는 한국에서 흔히 김치 항아리로 쓰이는 가정용 단지 같았다. 다만 금속제라는 점과 바닥에 3개의 다리가 달린 것, 겉에 뭔가의 문양이 새겨진 점이 독특했다. 표면의 문양과 형상으로 볼 때, 주술에 조예가 깊은 신씨와 김씨는 짐작 가는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충독」에 이용된 것이었다. 그 단지 표면의 문양도 충독에 능한 어떤 주술사 가문의 특징적인 문장이었다.

충독이란, 저주의 일종으로서 온갖 독충을 하나의 항아리에 담아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가장 독하고 원한이 서린 곤충을 이용한 저주이다. 그 독충을 소유하면, 잘 모실 경우에는 큰 보상이 뒤따르지만 그것을 잘 모시지 못할 경우에는 엄청난 저주가 내리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저주를 내리고 싶은 이에게 몰래 그 독충을 보내버려 그 독충이 저주를 내려 그를 망하게 하는 수법인 것이다.

그러나 보통 충독에 이용되는 항아리는 흙으로 빚은 도기로 만드는 것이며 금속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 단지는 철기로서, 충독용 그릇으로서는 아주 특수한 경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금속제 그릇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전통적인 그릇 대부분은 유기라고 불리우는 놋쇠 제품이었다. 온대 기후로 나무가 빠르게 잘 자라는 일본과 달리 한반도는 대륙성 한랭 기후라서 나무의 생육이 늦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제철에 대량으로 필요한 연료용 목탄이 부족하여 청동이나 놋쇠 제품이 주로 이용되었을 뿐 철기 제품은 매우 고가로 귀하게 취급받았다.

그런 귀중한 철기를 본래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인 충독용 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은 주술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2.
신씨의 조사에 의하면, 그 그릇은 한국계 도굴단에 의한 것으로 일본의 미술품이나 불상, 도검류를 수집하는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던 도굴단에 의해 한 신사에서 도굴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그릇의 정체는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파낸 도굴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도굴단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박씨 라는 사람에 의해 간신히 그것이 장물아비에게 전해졌는데...

그것은 사람이 접해서는 안 되는「저주의 그릇」이었던 것이다. 그 단지가 묻혀있던 것은 무명의 작은 산사로, 애시당초 저주용 그릇을 인간 세상에서 격리하기 위해 남의 눈을 피해 건립된 신사였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봉하려고 한 철 단지의 정체는...

「저주의 그릇」였다.

뚜껑을 열고 그 안에「어떤 것」을 봉한 후 뚜껑을 닫고 불길 속에 던져버리는 것이라고. 때문에 단지를 철로 만든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 안에 담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태아였다.

임산부를 죽이고 그 자궁에서 꺼낸 태아를 철 단지에 넣어 굽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12명을. 1년에 한 번, 12년에 걸친 대주술이었다. 그 12명의 임산부 중 11명은 팔려온 불쌍한 여자였다. 주술사에게 농락당해 아이를 임신하고 때가 되면 배를 갈린 후 그 아이를 철 단지에 담아 굽는 주술. 그 원망과 원한이 어떠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마지막 12번째의 대상은 무려 주술사의 딸이었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추악한 행동이지만, 본래 주술이란 수법이 추악하고 끔찍할수록 효력이 높은 것. 철 항아리가 안치된 동안 그 주변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죽어간 이후 주술을 완성한 주술사는 그것을 갖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주술사는 철 항아리를 갖고 일본 각지의 조선인 부락촌을 돌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갔다.

한편 그 주술사에게는 누나가 하나 있었는데, 그 누나가 남동생을 쫒아 일본을 돌다가 한 일본인 기도사에게 그 사실을 모두 말했고 그 누나의 상담 내용을 번역하여 기록해 둔 것이 키지마가 들고온 낡은 노트였다.


철 항아리는 쉽게 말해「저주의 태아」를 기르기 위한 일종의「자궁」이었다.
그리고 태아를 기르는「양분」이 되는 것은「살아있는 생명」이었다. 그 살아있는 생명이란주술사의 동포인 조선인이었다.

의식을 완성한지 10년 가까이 단지를 한국에 놓은데다 그 이후에도 일본 내 조선 마을을 돌면서 떠돌아 다닌 것은, 그 철 항아리 속「저주의 태아」가, 표적을 저주해서 죽일 수 있는만큼 자랄 때까지 무수한 동포의 생명을 빨아들인 것이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저주의 표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키지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저주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일본 황실」을 표적으로 한 것으로, 124대에 걸쳐 이어온 황통을 끊음으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대주술이라는 것이다.

나는 키지마에게 말했다.

「충독이나 인신공양을 통해 혈통을 끊는 주술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술의 수법은  너무 터무니 없지 않습니까. 무차별적으로 희생을 요구하다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게다가 황실이 망한다고 일본이 망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신씨와 김씨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고, 정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김씨는「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뭐 일본인이라면 모르는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는 그 주술이 일본의 황통을 끊으려고 한 것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3.
김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세계는 타문화·이민족, 이교도를 삼켜 지배하려는「지배자」와「피지배자」로 나뉜다고 했다.

지배자는 대략적으로 말해 유태·크리스트교, 피지배자는 토착 종교나 로컬문화 등이었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의 지배자는 중화 문명으로, 일본이나 인도, 조선 정도를 제외한 많은 아시아 제국의 지배층은 그 대부분이 중화의 지배를 받았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종교나 문화, 왕조는 그것이 길어질수록 그 이면으로는 주술적 측면이 자라난다고 한다. 지배를 계속하는 일은 달리 말해「업」을 쌓아가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지배」의 본질은 「악」이다.

그러므로 선대 왕조나 문명에 의해 축적된「악업」이 한계점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붕괴하기 마련이다. 피지배자나 민간의 주술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이에 대한 저항수단이지만, 반대로 지배자나 권력층의 주술은 대부분 파멸로 치닫는「업」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역병을 구제하고 재해를 막음으로서 그 업을 줄이려는 주술도 대부분 그 업을 줄이려는 수법인 것이다.

때문에 지배에 의해 겹겹히 쌓인 업을 억누르기 위해 더 크고 화려한 제사나 주술을 쓰면서 사회의 표면으로 주술이 드러날수록 그 국가나 문화는 멸망에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얄궂은 것은, 그렇게까지 하면서 업을 줄이려 하더라도 주술이나 신비한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빨리 파멸로 치닫게 되는데 그것은 본래 주술이나 신비스러운 힘 자체가 정화를 향한 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분명히 중화 문화권이나 유태 크리스트 권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이며 단 한번도 여타 문명에 종속된 적이 없는데 그것은 일본 황실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황실의 경우 권위나 지배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문화권의 왕조와는 달리 주술적인 면이 강조된 일종의 샤먼에 가까운 매우 특수한 계보를 가진 왕조라고 했다. 그것이 124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오며 지극히 강한 주술적 힘을 갖게 된 것이라고 했다.

결국「일본」이라는 나라는 일본 황실의 탄생에 의해 이어진 하나의 왕조에 지나지 않으며, 일본 황실이 무너진다는 것은 주술적으로 결국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일본 황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주술을 거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살행위와 다름없다고 했다. 수백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주술적인 문화를 가진 황실에 개인이 주술을 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주술은 명분이 있었다.

조선민족은 스스로를 소중화라 자처하고 중화 문명의 정당 계승자라고 자인하며, 그 어떤 외적의 지배에도 끝끝내 동화나 병합되지 않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 지배자에게 동화되지 않기 위해 민족심리로 길러진「한(限)」의 문화.

그들은 한이라는 민족 의식을 통해 독자 종교 따위를 갖지 않고서도 민족적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깊은 관계를 가진 일본은 마치 블랙홀처럼 한민족을 흡수했다. 몇 백년 동안 중화 문명의 영향력 아래서도 독자적인 문화와 민족성을 유지했던 한민족을 불과 수십년의 지배만으로도 신분의 위 아래를 가리지 않고 변절자를 속출시키며 흡수해냈기에 그 일본이라는 나라를 멸망케 하기 위해 그 주술사는 그런 대주술을 건 것이었다.

그러나 저주의 대상은 강한 존재였다. 제 아무리 무서운 희생을 들여가며 저주를 걸었다고 하더라도, 한 때 사실상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도 멸망하지 않고 태연하게 현재까지 존속할 정도의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오히려 그 철 항아리는 애꿎은 동포들의 목숨만 빨아들인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주술사는 바로 그게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반민족적인 친일 조선인들을 근절하기 위한 주술이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4.
나는 그것을 재봉인하기 위해 키지마와 함께 그것이 처음 묻혀있던 신사로 향했다.

신사는 눈 깊은 산속에 있었다.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그 다음은 지도와 GPS에 의지해 도보로 진행했다. 6시간이 넘게 걸렸다. 바위투성이의 강변을 지나 신사 앞 기둥문이 보였다.

그 기둥문을 지나자 불타 내려앉은 절이 있었다.

그 절 뒤에는 깊이 5m 정도의 인공 바위 동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철 항아리를 묻었던 것인지 항아리 크기 정도의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었다.

나는 키지마에게「어떻습니까?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고 말을 걸었다.
잠시 키지마는 입을 다물었다가 곧 입을 열었다.

「아니, 이 곳은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


풍수에 따르면 땅에는 소위 파워 스팟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맥이 집결되거나 대지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용출점이 있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지맥과는 따로 떨어져 지기가 극단적으로 희박한 장소도 있다. 그것을 일단 제로 스팟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제로 스팟은 부정한 존재나 주물, 주술을 지맥에서 끊어 봉인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로 스팟은 파워 스팟보다도 훨씬 적고 귀한 것이라고 했다.

이 신사도 어느 기도사 그룹이 그 제로 스팟을 찾아내 일본인 신관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이번에 김씨나 신, 정씨가 아니라 내가 키지마와 함께 온 것 역시 그런 제로 스팟에「길」을 내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계 도굴단이 발을 들여놓아 그 항아리에 생명을 빨린 탓에 의해 이 제로 스팟에도 길이 나버렸고 결국 그 스팟은 성역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해가 지기 시작했으므로 우리들은 신사의 동굴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동굴 안쪽에서 침낭에 기어들었고 이윽고 수마가 덮쳐왔다. 얕은 잠에 빠졌을 무렵 갑자기 의식이 또렷해졌다. 그러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 눌림이었다.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여러 사람의 소리,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여자의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는 이미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체 이탈의 상태였다. 나는 동굴 밖을 보았다.

동굴 밖에는 X자로 짜여진 나무에 손발을 묶인 피투성이 여자가 있었다. 손에는 칼을 든 피투성이 남자가 그녀의 앞에서 여자를 난도질, 여자를 그야말로 살아있는 고깃덩이로 만들더니 이윽고 부풀어 오른 배에 칼을 꽂았다. 굉장한 여자의 비명.

남자는 곧 여자의 배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것은 아기였다. 나는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나는 키지마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식은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다. 키지마의 얼굴에도 비지땀이 맺혀 있었다. 그도 아마 같은 것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키지마에게「그건···」하고 묻자, 키지마는「꿈이다. ···하지만, 현실이기도 하다···」라고 대답했다.

새벽까지는 다소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자지 않고 태양이 얼굴을 내밀 때까지 기다렸다. 산에서 내려온 나와 키지마는 정씨와 합류했다.

 

5.
정씨와 합류한 후, 우리는 철 항아리를 구입한 장물아비를 만났다. 장물아비가 지정한 스넥바는 낡은 가게로 흘러나오는 노래도 오래된 엔카 뿐이었다.

사전정보에 의하면 장물아비는 50대 초반이었지만, 눈 앞의 남자는 그야말로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중병이 든 노인이었다. 가끔 격렬한 기침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분명히 죽을 상이 떠있었다.

정씨가 철항아리의 행방을 묻자 장물아비는「니시카와라는 남자가 가져갔다」라고 대답했다. 나는「니시카와? 일본인 이름인데? 재일 한국인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물아비는「아니, 일본인이다. 단지 그 백이 위험하지. 놈은 ooo회 간부다」

그가 말한 것은 최근 큰 사회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는 모 컬트 사이비 교단의 이름이었다. 일종의 아나키즘적 종파로, 일본 정부와 황실을 비판하고 저주하는 종교였다. 그 종교단체라면 황실에 저주를 건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이 없었다.

장물아비의 말에 따르면, 그 단체의 녀석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거의 빼앗듯이 가져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쿠쿡 웃으며 말했다.

「그딴 기분 나쁜 쇠 항아리 따위, 필요없지만 장물을 취급하는 사람이 도둑질을 당해서야 체면이 안 서지. 찾는다면 자네들이 가져도 좋으니까 부디 되찾아와줘」

정씨가「알았다」라고 대답하고, 우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뒤로 했다. 돌아오는 차 안, 키지마가 정씨에게「어떻게하죠?」라고 물었다.

정씨는「나는 난폭한 것은 싫어. 감시를 붙여서 1주간 정도만 기다려보자고. 그러면 알아서 그쪽에서 항아리를 돌려주고 싶어질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과연, 니시카와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불행이 닥쳤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짧은 기간동안 연쇄적인 사고와 죽음이 잇따른 것이었다. 니시카와 자신도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중상을 입고 말았다.

「때가 왔다」라며 키지마는 니시카와의 포교원을 방문해 문제의 철 항아리를 손에 넣어 돌아왔다. 키지마가 돌아오자 정씨는 나에게 종이봉투를 건내주며「일전에 만나 장물아비한테 건내줘」라고 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상 100만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장물아비도 벌써 죽어있었다. 우리가 떠난 후 며칠동안 계속 미친듯이 술을 마시고, 깨면 다시 술마시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지만 헤어진 여자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돈을 보냈다. 여자는「그 사람이 죽었군요」라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돈을 받았다···


돌아온 나는 정씨에게「항아리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 신사는 이제 더이상 못 쓰는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키지마가「너, 오늘 밤, 항아리와 함께 밤을 지새워라. 마음을 텅 비우고 그 항아리를 계속 보면 된다. 내가 생각 해낸 방법으로 처리하자」라고 했다.

나는「잠깐만요, 니시카와 일행은 일본인인데도 죽었어요. 정말 괜찮은 겁니까」

사실 나는 철항아리 주변에서 잇따르는 죽음 탓에 꽤 겁에 질려있었다. 그 항아리가 세상을 모습을 드러낸 이래, 박씨를 비롯한 도굴단 5명, 장물아비, 중상을 입은 니시카와와 그 자리에 숨진 같은 종단의 그 아내, 그리고 종단의 그의 동료 등 벌써 1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게다가 니시카와 주변인들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신사 동굴에서 본 꿈 이야기도 있고 해서 나는 그 철항아리에 대해 어느정도 경계심이 싹트고 있었다. 하지만 정씨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너는 일본의 신들이 지켜주는 정당한 일본인이다. 항아리의 저주는 일본을 향한 저주이며 그 희생자도 일본을 망하게 하기 위한 희생물이 될 수 있는 이들 뿐이야. 니시카와 같은 놈들은 국적은 일본이라도, 일본을 망하게 하려고 사교에 혼을 판 놈들이니까, 영적으로는 이미 일본인이 아닌거야.

   뭐, 그 철항아리를 그대로 방치하면 요즘 같아서는 일본인이라도 목숨을 잃는 놈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너 정도라면 괜찮을거야」


나는 정씨와 키지마의 말에 따라 철 항아리와 함께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정씨가 가르쳐 준 명상법에 따라, 나는 마음을 텅 비우고 항아리를 계속 쳐다보았다. 이윽고 동굴 안에서 본 지옥과도 같은 이미지가 뇌리에 떠올랐다.

 

6.
새빨간 작열의 황야에서 전신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들과 그 발 밑에 깔린 갓난아기.
나는 우선 밝은 햇볕의 새하얀 설원을 떠올렸다.
그 다음 다시 눈이 녹은 봄의 초원 이미지.
명상에 의해 스크린에 떠오른 경치는 내가 생각하는대로 변했다.

나는 예쁜 여자의 나체를 이미지하면서 여자의 묶은 줄을 자르고, 발 밑의 아기를 여자에게 안게했다. 그러자 피를 흘리던 여자와 아기는 곧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이미지 작업을 계속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아 고개를 돌리자, 나와 11쌍의 모자 앞에, 동굴에서 본 그 칼을 든 피를 뒤집어쓴 남자가 서있었다. 나는 여자들이 공포에 질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남자에게「봐라, 여기는 더이상 지옥이 아니야」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조금은 이성을 찾는 듯 했지만 곧「멸망시킬테다」, 「일본을 저주한다」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대로「아직도 일본을 저주하나? 동포들을 죽이고 심지어 딸까지 죽여 일본을 망하게 한다고 해서 무슨 한이 풀린단 말인가?」라고 물어 보았다.

남자는 말을 잊지 못했다. 나는 다시 붉은 지옥의 영상을 떠올리고「아무도 저기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너 혼자 저기에 남고 싶나?」하고 물어 보았다. 나의 뇌리에「싫다」라는 뜻이 전해져왔다.

남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곧 눈 앞에 피를 흘리고 있는 여자와 갓난아기가 있었다. 아마 이 여자가 그 12번째의, 그 주술사의 딸이었을 것이다. 나는 방금 전까지 반복한「치료」의 이미지 조작을 실시해서, 남자였던 갓난아기를 여자에게 안게 했다.

그러자 여자들은 하나하나 사라져갔고, 마지막으로 12번째 모자까지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뇌리에 물었다

「어디에 가고 싶습니까?」

이윽고, 경치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나는 명상에서 깼다.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떠오른 이미지. 그것은 육지가 보이지 않는, 끝없는「바다」의 이미지였다.

나는 그 일을 정씨에게 전했다. 정씨는「그런가, 알았다」하고 대답했다.

내가 정씨의 지도에 따라 이미지를 떠올린 명상법은 공양법의 일종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주술이나 기도 의식에 대한 지식이 없고,「복수」등의 이미지가 없었던 것이 성공의 열쇠였던 것 같다. 또 오랫동안 신사에 봉인되어 정화가 진행된 탓에 철 항아리의 주술력이 제대로 힘을 못 쓴 것도 다행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봄을 기다렸다가 철 항아리의 본격적인 공양을 했다.
꽃과 술, 과일, 과자를 올린 제단에 승려의 독경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손을 모으고 명상으로 본 항이리 속 사람들에게「부디 성불하여,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 주세요」라고 빌었다.

며칠 후 다시 우리들은 김씨가 빌린 어선을 타고 해상으로 나왔다. 이윽고 배는 멈췄다.
하늘은 잘 개었고 물결도 온화했다.

정씨가「이것으로 끝이다. 마지막은 네가 할 일이다」라며 철 항아리를 나에게 주었다. 철단지를 나는 양손으로 집어들고 가능한 한 멀리 바다에 던졌다. 항아리는 눈깜짝할 시간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항아리를 가라앉힌 바다에 우리들은 꽃다발을 던지고 술을 따랐다.

손을 합장한 채로 잠깐 기도를 한 우리는 다시 배에 시동을 걸었다. 우리를 태운 배는, 항구로 돌아오는 항로를 향해 질주했다.

끝.


* 역주 : 일본의 웹에서 한국을 소재로 사용한 괴담은 매우 드문 편이고, 한국의 놋쇠 문화나 수목의 특성까지 언급할 정도로 자세히 언급을 한 것을 보아서는 아마 재일 한국인이 작성한 괴담이 아닌가 싶습니다만(이 글을 제공해주신 분은 일본인입니다만, 원문의 작성자에 대해서는 비밀이라며 대답을 안 해주더군요) 여튼 충독, 풍수, 한국의 한, 일본 황실 등 굉장히 독특하고 폭넓은 오컬트적 소재를 차용한 괴담이라 소개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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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민하는 어머니

3세 아들의 성기를 절제하여 여자아이로 만들고 싶습니다만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 역주 : 이하의 내용은 상당히 수위가 높은, 그로테스크한 내용이므로 이런 류의 내용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나 미성년자는 열람을 자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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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 무렵, 지하철 홈 구석에서 술주정꾼이 선로로 향해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토해내다 조금 잦아든 듯 했지만 갑자기 크게 선로에 머리를 내밀고는 입에서는 분수처럼 구토물을 끝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기분 나빴지만 너무 대단한 광경이라 계속 보고 있었다.

그때 타이밍이 나쁘게도 저기 커브 앞에서 전철이 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위험하다 생각한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녀석이 내민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턱 위로 부서진 머리 덩어리가 옆 기둥으로 날아갔다.

검은 머리카락이 붙은 덩어리가 기둥에 부딪히고는 마치 수박처럼 박살이 났다. 회색빛 뇌는 새빨간 피와 함께 녹아내렸다. 두개골은 마치 망가진 헬멧 같았다.

우우-하고 생각한 순간, 아래턱만 남은 머리를 단 몸이 홈 중앙까지 기어갔다. 이미 그런 처참한 광경을 본 손님들의 엄청난 비명소리가 온 역 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몸은, 부서진 머리를 향해 멈췄다. 아랫턱의 이빨과 혀만 목에 들어붙어있는 상태였다. 목구멍에서는 공기가 피와 섞여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거품을 내고 있었다.

몸은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무릎을 세운 것처럼 널부러져 있던 몸은 다리를 바닥에 몇 번씩이나 문지르며 부서진 머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토록 온 몸의 털이 곤두선 적은 없었다. 뇌가 없는데도 단말마의 괴로움에서 도망치려는 듯한 발광... 언젠가 들었던, 목을 자른 닭이 그대로 몇 분씩이나 돌아다닌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이건 인간이다...

문득 기둥쪽을 바라보자 부서진 머리에서 빠져나온 눈알이 널부러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러다가 미칠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얼어붙었다.

이것이 열차사고의 현실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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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로 폐허가 되어버린 성과 그 성이 자리잡은 도시.
그 안에는 그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을 상징하는 듯 그저 높다랗게 솟은 황량한 고성만이
서 있을 뿐이다.

도망쳐버린 양 한 마리를 쫒아 멀리까지 와버린 어린 목동은 우연히 그 마을과 성을 발견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었던「저 산 너머 있는 마을의 성에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거라」라는 훈계가 떠올라 서둘러 몸을 틀었지만...

곧 호기심이 공포심을 이겨, 며칠 후 목동은 그 성 가까이 가고야 만다.

끝없이 지하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걷던 목동은「여기 어딘가에 보물이라도 있는 것일까?」
하는 유혹에 휩싸였고 더욱 빨리 걸었다….

머지않아 긴 복도로 나온 목동. 복도 양 측에는 무수히 많은 감옥이 늘어서있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일까. 그저 해골 뿐이다. 그리고 저 끝에는 무거운 문이 있었다.

소년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을 열기로 했다. 처음에는 잠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굳게 닫힌 문이었지만 힘을 주어 밀자 곧 문이 열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짙은 곰팡이 냄새와 악취와 습기. 그리고 독특한 향을 피운 듯한 묘한 냄새.

눈 앞에는 지나쳐 온 감옥보다 한층 더 두꺼운 창살로 지어진 감옥이 있었으며, 어둠 저 편에는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것의 정체가 확실해졌다.

인간이었다. 그것도 무척 나이를 많이 먹은 인간이었다.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노인은 말했다.

「오랫만에 인간을 본다… 왜 내가 이런 곳에 묶여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그는 부자연스러운 손으로 천천히 손짓한다. 소년은 가슴을 조이며 지켜보다가도 이윽고 감옥 문에 손을 댔다. 노인은 말했다.

「들어오너라…. 열쇠는 잠겨있지 않으니까. 너에게 하나 묻지. 인간에게는 호기심이 있다.
   그리고 공포심도 있다. 용기도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 너에게는 호기심과 공포심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용기도 있을까?」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을 열고 노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뒤로 쾅! 하며 무거운 충격과 소리가 울렸다.

소년은 동요했다. 노인은 숙였던 얼굴을 올려다보며 차갑게 단언했다.

「때때로 지나친 용기는 신세를 망친다…. 이 성을 돌아보면서 호기심을 채운 후에는 그저 이 감옥 앞에서 공포심에 휩싸여 도망쳐버렸다면 좋았던 것을…」

소년이 당황하며 주변를 바라보자, 엄청난 수의 백골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감옥문은 안쪽에서는 두번 다시 열 수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소년은 다음 순간,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노인은 미친듯이 군침을 흘리며 좋아하다 이렇게 외쳤다.

「역병의 세계로 어서오너라!」

※ 미국의 도시 전설「에이즈 메리(어떤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관계를 갖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화장대 거울에 '에이즈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글씨가 써있더라는 이야기)」의 유래가 된 유럽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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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 덜 된 외국의 오지 마을이나, 혹은 다른 지역과 교류가 많지 않은 패쇄성 높은 마을에 머물 때에는 그 마을의 대표자에게 잘 보여야 해.

예전에 중국어에 조금 자신이 생겼다고 중국 오지 마을들을 여행다닌 적이 있었는데 한 시골 작은 마을에 놀러갔다가 그 마을의 장로쯤 되는 사람이 나를 여자라고 너무 무시하길래 가볍게 말싸움을 한 적이 있었어. 이후 내가 묵는 여관에서 내 짐이 없어져서 주인한테 말을 해도 무시하고, 심지어 그 지역 경찰에 말을 해도「기분 탓이겠지」라면서 극도로 나를 무시하지 뭐야.

게다가 돌아갈 때서야「저기, 마을 입구 옆에 분뇨 구덩이 근처에 비슷한게 떨어져 있더라」며 가르쳐 주더라구.

그때는 그저 투덜대고 끝이었지만, 마을을 나오면서 생각해봤는데 만에 하나 내가 어떤 신체적인, 성적인 봉변을 당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싹했어. 곧바로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왔지.

외부와의 교류가 많지 않은 폐쇄 지구에서는 자연스럽게 권력의 집중이 이뤄지기 쉬운 탓에 그 대표자와 마찰을 빚을 경우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교류가 많지 않은 경우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갖기 쉬운 탓에 더욱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에 의해 그런 괴롭힘에 동참하기 싫은 사람조차 권력이 집중된 대표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곧 마을 전체를 적으로 돌린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비록 그것이 억울할 지라도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으며, 그것에 불합리함을 느껴 어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자 하더라도 오랜 기간 체류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저 현실에 타협하거나 서둘러 떠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본문의 내용처럼, 그 배타적인 반응이 집요한 괴롭힘이나 범죄의 형태로 나타날 경우 피해자가 감수해야 할 피해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권력이 집중된 폐쇄성이 높은 사회,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위험지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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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검시관이 쓴 실화 서적에서 발췌.

얌전하고 착한 부인과, 남매를 자식으로 둔 한 샐러리맨 가장. 회사 일도 언제나와 다름없이 잘 풀려나가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부인은 그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오해했다.

문제가 된 것은 접대를 위해 갔던 캬바레식 클럽에서 찍은 사진. 일 때문에 간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유흥문화 따윈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곱게 자란 부인에게, 화려한 옷을 입은 요염한 여성과 나란히 앉아 웃는 남편의 모습은 그저 바람의 증거일 뿐이었다.

때문에 그 날 이후 말싸움이 끝도 없이 지속되던 어느 날, 남편은 시체가 된 부인을 발견한다. 남편의 부정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메모가 남아있었다.

터무니 없는 오해 때문에 비극이 빚어졌다고 한탄하는 남편.

하지만 한낮 오해 때문에 어머니가 자살까지 할 리가 없다며 아이들은 아버지를 혐오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인의 자살사건 얼마 후, 이번에는 아이들이 자살했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간 부정한 아버지 밑에서 있을 수 없다며 홀로 간 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하다고 누나가 동생과 함께 동반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남동생도 누나의 말에 동의, 둘은 자살했다.

그리고 둘은 유서에「아버지는 우리에게 손대지 말아요」라는 내용을 남겼다. 어처구니 없는 오해로 온 가족을 잃은 아버지는 깊은 비통함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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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자란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가 어렸을 적, 강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상류쪽에서 종이배 하나가 떠내려왔다. 예쁘다고 생각해서 집에 갖고 돌아가자, 부모님은 그걸 보고 어딜 귀신한테 잡혀가려고 강가에서 그런 걸 집어오냐고 지독하게 혼이 났다고.

그날 밤, 아버지는 고열과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긴 꿈을 꾸었다.

무서운 귀신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 마치 지옥의 풍경 같았다.

다음 날 아버지는 그 배를 다시 강가에 띄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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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불과 몇 달 전까지 모 온라인 RPG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혼자 퀘스트를 해결하고 레벨을 올리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만, 플레이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레벨도 높아지고 친구도 늘어나 저는 게임이 정말 즐거워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이가 좋았던 두 친구와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갖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동갑내기에다 취미도 맞는 친구였으므로 저는 OK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겁도 조금 났지만 남자와 단 둘이 만나는 것도 아니고 둘과 함께 만나는 것이라서 오히려 다소 안전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남의 날.
 
저희는 오후에 전철을 타고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도시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모였습니다. 그 둘도 제 시간에 맞춰 왔고, 영화도 보고 게임 이야기도 하면서 매우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이제 돌아갈까 생각해서 둘에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둘이 입을 모아

「잠깐만, 꼭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
 
라길래 저도 거기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 둘이 저를 데리고 간 곳은 폐허가 된 빌딩이었습니다. 저는

「에? 여기에 가고 싶었어?」
 
하고 물었습니다만, 둘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과는 분명히 분위기가 다릅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빌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뭔가 위화감을 느껴

「자고 간다는 말은 안 했어」
 
하고 말했습니다. 저의 말에 두 남자는 씨익 웃으며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큰 두려움을 느끼며 둘을 뿌리치고 쏜살같이 도망쳤습니다. 둘이 따라올지도 몰랐지만 저는 뒤돌아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역에 도착하자 운 좋게 막차가 있었으므로 저는 바로 올라탔습니다.

안심하고 저는 문득 차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무서운 얼굴을 한 둘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만약 전철이 마침 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지... 또 나말고 다른 피해자는 있지 않았을지...

저는 그 날부터 게임을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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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문은 몇 십대째 내려오는 기도사 가문으로, 옛날에는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제사도 올리고 또 요즘 말로 하면 엑소시즘도 하는 그런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런「미신」을 가업으로 삼은 가문답게, 상당히 안 좋은 풍습이 있었다.

그것은「가문을 책임지는 당주가 죽었을 때, 가문에서 가장 어린 인간을 인신공양 한다」라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가문의 피가 흐르면 그 대상에 포함된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내가 그 대상이었던 것이다.

「혈족의 처음과 끝을 연결함으로서,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않고 혈족 안에서 맴돌게 하기 위해」라는 이유. 

그래서 옛날에는 당주가 죽으면 가문에서 가장 어린 아이를 죽여 그 두 사체를 큰 관에 함께 넣고 둘의 사체를 훼손하여 관을 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매장.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 살인은 범죄. 때문에 그 대신 7일간 유골과 함께 절에서 같이 지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의식은 아직도 성립하는 모양.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 의식을 벌이는 도중이나 7일이 지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하게 어린 아이가 죽게 때문에, 나는 내심 우리 가문에서 아이가 절에서 보내는 7일간 무슨 수를 쓰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그런 잔인한 의식에 불만이 나오지 않을 리 없었고, 한때는 이 의식 자체를 폐지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자 불길한 일들이 마구 터져나왔다. 태어날 아이가 유산을 당하거나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게다가 당주가 될 사람이 연달아서 사고사. 그 외에도 별별 안 좋은 일이 다 일어났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행히 사촌 여동생이 얼마 전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내가 인신공양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났다며 아버지가 가르쳐 준 사실.

그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는 날까지는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도 금지되어 있기에 말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만약, 바로 얼마 전까지 현 당주인 고령의 할아버지가 돌아셨더라면 나도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공포에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촌 여동생이 낳은 갓난아기가 너무 가엾다. 
Posted by 리라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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