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40년도 더 된 이야기.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시골에서 상경한 A는 OO공단의 한 큰 공장에서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다. 2교대로 돌아가는 일은 무척이나 바쁘고 힘들었지만 사람들도 다들 좋고, 큰 공장이라 기숙사까지 지원되어 생활비가 절약된다는 점은 좋았다. 무엇보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집에 부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고향으로 부치는 얼마간의 돈은 집안살림에도 큰 도움이 될테고, 어린 동생들의 학자금도 될테니까. 그리고 그런 사정은 다들 비슷해서, 함께 기숙사에서 지내는 언니들의 사연을 듣노라면 눈물도 나고 공감도 되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힘을 내곤 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같은 방을 쓰게 된 B 언니는 고향에 있는 막내동생 같다며 A를 무척이나 아꼈는데, 조금 푼수끼가 있어서 연차에 비해 실수도 잦고 건성건성인데다 근무 중에 자주 졸기까지 해 라인장에게 자주 혼나는 편이었지만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A가 공장 일도 조금 익숙해졌고 생산라인의 여러 업무에도 숙련되어 가던 어느 날 늦은 오후의 일이다.
점심 식사를 조금 과하게 먹은 탓인지 조금 노곤함을 느끼던 A는 무척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온 공장 안에 크게 울려퍼진 무서운 소리. 아득하게 멀고도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전신을 얼어붙게 만드는 어떤 섬뜩한 비명. 그리고 그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다.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는 가운데, 갑자기 모든 생산 라인이 멈추고 빨간 싸이렌이 울렸다.
잠시 후 몇 명의 관리 직원들이 당황하며 어디론가 뛰어 들어갔고, 반대로 안쪽 생산라인에 있던 다른 언니들이 반쯤 이성을 잃은 듯한 무서운 표정으로 엉엉 울며 뛰어 나왔다.
무언가 큰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그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던 가운데, 안쪽 라인에 있다가 울며 뛰어 나온 누군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다가오더니 A의 손을 잡았다. 당혹감에 무어라 말도 제대로 못하며 그저 그녀는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고 외칠 따름이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B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A는 불안함과 걱정에 이미 눈물을 터뜨리며 안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A는 옆 생산동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현장 통제를 맡은 다른 관리직 사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그저 살짝 열린 문 틈으로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고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만을 얼핏 보았을 따름이었다.
곧 구급차가 도착했고 역시나 다친 사람은 B였다. 그녀가 들것에 실려 급하게 실려나간 가운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A는 물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다.
"B가 안전두건을 깜박했다가 머리카락이 기계에 말렸는데, 기계가 억세서 그런지 머릿가죽이 통째로 뜯겨버렸어"
A가 들은 '호랑이 소리'는 사람의 머릿가죽이 통째로 뜯겨나갈 때의 비명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