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여동생이 아직 어렸을 때, 아버지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직 아버지가 젊었을 무렵, 혼자 자취를 하던 때에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윗층에 사는 남자랑 만나
함께 쓰레기를 버리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했다고.

그 후 방에 돌아와서 환기 좀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바로 그 때 윗층 남자가 위에서 떨어지더란 것이다.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자살이라니.
엄청나게 놀랐다고.

나중에 주변 사람으로부터 돌발적인 자살이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뭐 그렇게까지 무서운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때 만약 얼굴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더라면, 시선이 마주쳤을테고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에 아버지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고.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여동생이

「바로 윗층에서 뛰어내린 건데 왜 뒷 모습이야?」
 
라고 물어서, 그 질문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그때는 전혀 왜 모두 입을 다물었는지 몰랐지만
아버지는「왜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까…」하고 중얼거렸고
그 이후로는 그 이야기를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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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조선 말기, 강원도 강릉의 오 진사댁 환갑 잔치. 종을 22명이나 부릴 정도의 부자집이었던 만큼 환갑 잔치도 거하게 치뤄지고 있던 도중…  

"은임아, 은탕기도 내오고, 뒷 편에 가서 술 좀 더 떠와라"

밭 일 나간 종 십여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종들이 총동원 되었음에도 워낙에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던 차에 막내 남동생을 보고 있던 넷째 딸 은임까지 일에 동원이 되었습니다. 등에 동생을 업고 부들부들 떨며 귀한 은탕기를 꺼내었습니다. 순은으로 만든 이 은탕기는 특히나 어머니가 아끼는 그릇.

은임은 이제 그 그릇과 술 주전자를 들고 장독대로 향했습니다. 키보다도 더 높은 큰 독에 발판을 놓고, 옆 장독대에 잠깐 은탕기를 올려놓고… 이제 술주전자에 술을 듬뿍 떠서 내리는 순간, 등에 업고 있던 동생이 그만 은탕기를 툭 쳐서 그 큰 술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은임도 그만 깜박하고 그냥 술 주전자만 들고 앞 마당의 잔치판으로 들고 가버렸구요.


잔치가 끝나고, 화기애애하게 뒷정리나 지어야 할 오 진사 댁에서는 무서운 문초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확실히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는 종 십 여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임시로 마련된 형틀에 묶여 주리를 틀리고 있었습니다.

"끄으으으으으으윽! 아니어요! 절대 아니어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리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 종들은 절대 자신이 '은탕기'를 훔치지 않았다고 울부짖었지만, 당장 오늘까지만 해도 있던 은탕기가 한창 바쁜 잔치 도중에 사라졌으니 범인은 종들이 틀림없으리라 확신한 주인 마님은 오히려 더 역정이 날 노릇이었습니다.

몇 시간에 걸친 지독한 문초. 보는 사람이 다 진땀이 날 정도의 고문이 이어졌지만 범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에 격분한 마님은 무당까지 불렀습니다. 그 자리에서 굿판이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그 굿의 내용도 무시무시한 것이 "그 은탕기를 훔쳐간 놈은 그 자리에서 죽으리라" 하는 내용. 한 밤 중에 불을 밝히고 벌어진 굿판. 동네 사람들이고 집안 사람들이고 그 무시무시한 굿판을 구경하노라니…

그 굿도 요상한 것이, 시루에서 갓 쪄낸 뜨거운 떡, 김이 펄펄 나는 그 뜨거운 떡판 위에 고양이를 던지면서 "가져간 놈은 그 즉시 죽으리라!" 하고 저주를 퍼붓는 굿이었는데 과연 고양이를 그 뜨거운 떡 위에 던지자 고양이는 펄쩍 뛰어오르며 어디론가 달려가는데… 

그것은 은탕기를 큰 술 독에 빠뜨린 그 집의 막내 아들. 그 고양이는 어린 아이에게 달려들더니 사람들이 채 말릴 새도 없이 어린 아이를 할퀴고 목덜미를 물어뜯었습니다. 그 끔찍한 광경에 사람들은 다 기겁을 했고 굿판은 그렇게 끝났지만 며칠 후 그 막내 아들은 정말로 죽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그 술은 이제 못 쓴다며 술독을 비우는데 그제서야 그 안에서 은탕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모진 고문에 이제 다리를 못쓰게 된 종까지 있는 상황에서 밝혀진 억울한 누명. 그리고 그제서야 일이 어떻게 된 것인가를 깨달은 넷째 딸의 고백. 

집안 분위기는 흉흉해졌습니다. 당장이라도 집에 불을 싸지르고 주인 가족을 죽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집안 어르신은 결국 자신의 오해 탓에 고문을 받은 종들과 그 식솔들의 노비 문서를 태우고 그들이 먹고 살 토지까지 나눠주고 그들을 달래었습니다. 그 종들 중에는 부부의 연을 맺은 종도 있다보니 그들을 함께 풀어주고, 먹고 살 만큼의 땅까지 주고…

그렇다고 하여 당장 집이 망할 정도야 아니었지만, 문제는 종들의 몸을 망가뜨리고, 또 고양이에게 자식이 물려죽는 등 흉흉한 소문이 동네에 돌고나니 그제부터는 과연 사람들의 마음도 떠나 집이 서서히 몰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근 백 여 년 전, 강원도 강릉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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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00%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어느 병원이든 아마 비슷한 것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른바 '죽음의 침대'. 유독 그 병실, 그 침대를 쓴 환자들의 사망율이 높은 그런 곳 말이다.

중환자실의 경우 유독 이상할 정도로 사망율이 높은 그런 침대가 한 두개 정도는 꼭 있기 마련이고, 일반 병실이라면…애시당초 병세가 좋지 않았던 환자라면 그러려니 하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입원한 환자조차도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거나 심지어 전혀 뜻밖의 질병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몇 차례 발생하고 나면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아무래도 찝찝한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

병원이라는 곳이 의례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곳이다보니, 의외로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나름 미신이 판을 치는 곳이다. 따라서 그런 병실이나 그런 침대의 경우 가급적 가능한 한 최대한 비우기 마련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의료인들이 미신/징크스를 믿는다기보다는, 그런 미신을 믿는 일반인들의 항의가 두려워서 그런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기 입원 중인 누군가가 또 말해준다면 모를까 환자 입장에서 그런 징크스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한게 사실.

입원 수속을 밟을 때 간호사들이 수근거린다거나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유독 파격적인 입원 조건을 제안한다거나, 만약 병실을 배정받았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옆 병실, 옆 침대 사람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않다면…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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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사귀며 동거를 하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 그녀에게로 떠나 더이상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집에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근했어. 이제 일하러 나왔을 때 집에서 잤어. 그리고 니 돌아오기 전에 출근했고」

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분명 집에 귀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단지 나에게 질려서 헤어지고 싶은 것 뿐인가, 아니면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일까 상당히 고민되었습니다.

밤에는 거의 잠도 못 자고, 식욕도 없고, 무엇인가를 할 기력도 없이 회사에 가서 일하는 것 이외에는 정말 집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보내는 짓을 2개월이나 지속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구태여 그를 추궁하지 않은 것은, 그의 거짓말을 확인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가 말한 것처럼, 내가 없는 동안에 잠깐 돌아와서 자고 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의부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과 함께 또

차라리 내가 싫으면 싫다,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그건 그대로 좋으니까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천천히 변화하여,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데도 그는 즐겁게 놀고 있겠지, 분하다, 밉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상할 정도로 남친의 상대 여자가 저는 분명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녀의 얼굴까지는 모르겠지만, 헤어스타일이나 체형, 심지어 그와 둘이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모습까지도 어렴풋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후, 거의 울먹이는 남친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 다른 여자가 생겼고 그녀의 집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너에게 돌아가지는 않겠다, 미안하다,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사실을 말하는지, 끝까지 거짓말로 여자의 존재를 숨긴 채로 헤어질 수도 있었는데, 하며 캐물었습니다.

그러자 거의 매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가 눈 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잠을 자고 있으면 어느새 옆에 나타나서 가위 눌리듯이 귓가에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하고 계속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거짓말이 들켰구나, 더이상 숨길 수 없구나, 싶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사귀어 온 너와 이런 식으로 차마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고민하다 끝내 이별을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네가 무섭다. 더이상 네 곁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헤어지는 것은 모두 자기 책임이다, 제발 용서해달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의 죄책감이 제 살아있는 영혼을 본 것인지, 게다가 하필이면 헤어지는 이유도 하다못해 내 영혼 탓이라니 정말로 나를 끝까지 비참하고 나쁜 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싶어서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확인을 해보고 싶어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그 상대 여자의 특징을 말해보았습니다.

밝은 갈색 머리의 짧은 헤어스타일, 신장 155cm 내외의 마른 체형, 쇄골 근처에 점이 나란히 줄지어 있고, 왼팔에는 화상 자국이 있다, 라고.

그러자 통곡을 해가며 미안하다고 계속 외치는 그의 떨리는 소리를 듣고 나도 이별을 결심했습니다. 

이상, 제가 살아있는 영혼이 되었을 때의 체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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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본인들을 가리켜 얕잡아 부를 때 흔히 '쪽바리'라는 비속어를 사용하듯, 일본인들 역시도 한국인을 얕잡아 부를 때 '춍(チョン)'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매우 질이 안 좋은 단어입니다)

또한 특히 그 '춍'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단어 중에 가장 유명하면서도 질이 안 좋은 단어라고 한다면 '바카춍 카메라(バカチョンカメラ)'가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에 가까운 단어입니다만.

처음 자동 카메라가 나왔을 때 상인들은 그에 대해 '바카춍 카메라'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 손쉬운 이용법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보같은 한국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 라는 의미로 '바카춍 카메라'라는 별명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OOO도 할 수 있는' 류의 과장된 표현은 일본에서는 꽤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라(EX:원숭이도 할 수 있는 특선요리 등) 이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재일동포나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이 중에서도 이 '바카춍 카메라'의 유래에 대해 그처럼 알고 있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그 표현에 대해 매우 큰 분노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가장 유력한 학설이자 설득력이 높아 보이는 표현은 다릅니다.

그것은 '휴가지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카메라' 라는 의미에서 VACATION CAMERA가, 일본에서 일본식으로 불리는 와중에 '바케숀 카메라', 더 나아가 '바카춍 카메라'로 잘못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몇 번 발음해보면 실제로 그러기도 쉽거니와, 처음부터 뜬금없이 '바보같은 한국인들도' 라는 극단적인 문구를 사용해가며 마케팅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을 때 이 후자 쪽이 더 유력한 의견이 아닐까 싶은 면이 있습니다.

물론 설령 유래가 그렇다고 한들 언제부턴가 바카춍 카메라 라는 표현은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의미가 분명 부여된 바 있고, 실제로 아직까지 그 이름의 유래를 안 좋은 의미로 믿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더 어떤 그 진실을 파헤쳐가며, 이런 식으로 '가뜩이나 헤쳐나갈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꽉 막힌 한일관계에 쓸데없는 '또 하나의 오해'는 쌓을 일이 없게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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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의 시체 검시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하게 이루어진다.

시체를 마치 물건처럼 가슴에서 하복부까지를 Y자로 갈라내고 얼굴 가죽도 벗겨내는 것은 물론, 전동톱으로 머리통과 절개한다. 봉합 같은 것이야 이미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 엉망진창 대충하는 경우가 많다.

장의사가 나중에 손을 보지 않으면 사체를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만드는 레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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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치과. 하지만 치통은 도저히 견디기 힘든 아픔. 드디어 치료를 결심하고 병원에 가게 되는데… 절대로 가기 싫은 치과지만, 당신, 혹은 주변에 이런 경험한 사람 없나?

「여자 치과의사/간호사에게 치료를 받던 도중 그녀의 가슴이 내 몸에 닿은 적이 있다」

라는.

사실 이것은 환자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한 어떤 종류의 서비스라고 한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환자도 기분좋게 치료를 받은 셈이라 높은 치료비가 나와도 딱히 불평을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당신은 모른다. 치료비에 서비스료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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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세태를 반영해서 그런지, 열차에 뛰어들거나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거나 대형 교통사고 등으로 사체 손상이 심한 경우가 많다고. 비율로 보자면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어도 분명 그 숫자는 늘어나고 있는데… 골치를 썩는 것은 장의사다.

심각하게 훼손된 사체를 현장에서 수습해 오는 전문 직종이 생겨났을 정도로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사체를 어떻게 하면 유족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복구할 수 있을까.

그 고심 끝에 나온 신 병기가 바로 이것이다.

붕어빵 만드는 기계는 알지? 그것을 힌트로 개발된 것으로, 말 그대로 원형이 남아나지 않은, 그야말로 고기토막들을 그 제형기에 넣고 열을 가한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적어도 그 형태만큼은 적당히 사람 모양으로 완성이 된다고. 거기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히는 등 염 작업을 마치고 유족에게 인도한다.

만약 형태에 맞는 사체의 양이 적을 때에는, 적당햔 양의 물과 밀가루를 의족처럼 틀이 될 수 있는 것에 맞춰서 섞어 넣고 열을 가한다. 그러면 사람의 형태가 될 때까지 굉장히 좋은 향이 감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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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양 눈이 모두 먼 데다 휠체어를 탄 팔까지 조금 불편한 하반신 불구를 지닌 여자애의 생활 도우미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간단한 일들을 돕는 정도였지만 점점 익숙해지다보니 그 부모가 자리를 비우거나 하면 화장실 시중을 드는 등 거의 간병인 노릇마저 하기도 했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그저 몸을 일으키고 변기에 앉히고, 닦아주는 정도에 불과해서 그리 큰 저항은 없었다.

그 일을 몇 달간 했을까. 관둔 지 얼마쯤 지났을 무렵, 어느 날 그 부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조금 쫄았지만, 그 내용은「우리 애가, OO씨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잠깐 와 줄 수 있겠어요?」라는 내용이었다.

상사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이야기 상대나 해주러 그 집에 갔지만 뜻밖에 그 부모는 나에게 돈이 담긴 봉투까지 내밀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구태여 불러낸 것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사례금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자애 방의 문을 열자 그 아이가 알몸으로 침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은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었고 나도 한창 때이기는 했지만, 그런 것을 떠나 심리적 저항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장애 여부를 떠나서 밑도 끝도 없이 돈을 받고 전혀 애정이 없는 상대와 관계라니.

다시 돌아나와 부모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그 부모는 매우 곤혹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이것이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직접 이대로 평생 연애 한번 못 해보고, 남자랑 한번 잠을 자보는 일도 없이 늙어죽고 싶지는 않다, 언제 또 이런 마음이 들지, 또 언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길지 그 여부조차 불확실한데 그게 너무 싫고 무섭다, 라고 말을 하며 나를 지명했다는 것이다.

눈물까지 보이는 그 부모를 보노라니 묘한 마음이 들었다. 또 여자가,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달 간 그녀의 삶을 옆에서 돕고 지켜본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하겠다고 응락했다.

마음을 먹고나자 관계 자체는 별다른 것도 없었다. 그녀의 쾌감 여부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좋아하는 사람과, 남들도 다 하는 어떤 행위를 함께 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일을 마친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신과 결혼을 해달라는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을테니, 다른 여자가 생겨도 좋으니 가끔 이렇게 자신의 얼굴도 봐주고 이런 관계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결혼한 지금도 나는 아내의 눈을 피해 가끔 그녀를 만나 관계를 갖고 있다. 물론 돈은 받고 있지 않다. 언젠가 물었던 적이 있다. 눈이 보이지도 않고, 그저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으니 간병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던 왜 나를 지명했냐고. 그러자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외모로 고른다고 할 순 말할 수 없지만, 말투나 행동거지에서 느껴지는「마음의 용모」가 마음에 들었다고.

물론 아내는 내가 봉사라는 이름으로 그녀와 관계를 갖는 일은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털어놓을 일은 없을 것이다.


* 괴담천국에 소개할 이야기는 아니다 싶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묘한 분위기, 또 아내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이게 괴담'하는 느낌으로 소개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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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와서는 거의 단어로나 남은 의식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만 해도 '처녀/총각으로 죽으면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된다' 라는 믿음 때문에 미혼인 상태로 사망한 자식를 가진 부모의 경우 그 영혼결혼식을 치뤄주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미혼인 채로 죽은 남녀의 부모가 협의 하에 일종의 제사 의식을 차리면서 그 둘의 결혼을 치뤄주는 것인데… 사실 의외로 결혼적령기에 죽은 사람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왠지 찝찝한 미신을 위해 돈까지 들일 사람은 더더욱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영혼결혼식 전문 중매장이(보통은 영매사가 그 역할을 겸임)가 그런 부모들을 이어주기도 했는데, 때로는 정말 영혼결혼식을 치룰 사람이 부족해서 그 돈을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놓고 가짜 부모를 만들어 사기를 치거나(?) 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한가지 무서운 것은,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이 영혼 결혼식을 치룰 경우 저승의 배우자가 질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빨리 오라고 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이승에 멀쩡히 살아있는 가짜 남편/가짜 부인은 결혼이 아주 늦어지거나 혹은 신변에 안 좋은 일이 다발한다고. 

도시화, 문명화가 이뤄지기 전… 토속신앙과 근거없는 미신이 사람들에게서 널리 믿어지던 무렵이라면 제법 있을 법도 한 이야기입니다. 

또, '정말로 그런 것을 믿던 시절' 과는 달리 '미신'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 속에 퍼진 이후의 시대라면 '결혼도 못하고 죽은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을 노려 그러한 제안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돈을 뜯어낼 수 있다면 사기꾼들이야 무슨 짓인들 할 수 있겠지요. 한국 같은 경우도 무속신앙이 제법 널리 믿어지는 나라인 만큼 요즘에라면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몇 십년 전 정도라면 있을 법한 이야기.

마지막의 그 가짜 남편/부인의 결혼이 늦어지거나 신변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사기를 쳐도 그런 식의 사기를 쳐서는 안된다' 라는 사람들의 분노와 인과응보에 대한 바램이 섞여 생겨난 믿음이겠지요. 또, 실제로 생각해보아도 그런 류의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멀쩡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닐테니(범죄자라면 더욱) 결혼이 늦어지거나 신변에 안 좋은 일이 생길 확률도 높은 편이겠지요.

그 본인 스스로도 무언가 일이 꼬이면 죄책감이랄까 찝찝함이랄까 하는 것 때문에 '그 일 이후로 뭔가 안 풀리네'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테구요.

예외적인 경우로 연인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사람이 그 사랑을 잊지 못해 죽은 사람과 결혼식을 치루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그 정도로 깊은 사랑과 슬픔'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을 가능성도 높고 그만큼 안 좋은 일이 주변에 생기기도 비교적 쉬운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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