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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05 심야 29
나에는 조금 이상한 취미가 있다.
한밤 중이 되면 집의 옥상에서 쌍안경으로 내가 살고 있는 거리를 관찰하는 것.
평상시와는 다른, 아주 조용해진 거리를 관찰하는 것이 즐겁다.
멀리 보이는 큰 급수탱크, 술주정꾼을 태우고 언덕을 올라가는 택시,
혼자 불빛을 내고 있는 자동 판매기 따위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두근두근한다. 

우리 집 서쪽에는 긴 언덕이 있고, 그 언덕은 곧바로 우리 집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옥상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그 언덕 전체가 정면에서 시야에 들어온다.
그 언덕의 옆 길에 설치되어있는 자동판매기를 쌍안경으로 보던 도중-

언덕 꼭대기에서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는 놈이 있었다.

「뭐야?」하고 생각하고 쌍안경으로 바라보자 알몸에 빼빼 마른 아이같은 놈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안고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왔다.

놈은 분명히 내 존재를 깨닫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저 멍하니 바보처럼 바라보고 있었지만 왠지 굉장히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집 안으로 도망쳤다.

문을 닫고, 열쇠를 잠그고

「뭐야, 어떡해! 어떡하지? 뭐야 그거!」

하고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두다다다다다닥 하고 옥상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나를 찾고 있다.

「위험해... 어떻게 하지?」

하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거실 한가운데에 있던 다리미를 무기로 손에 들었다. 잠시 조용해졌다 싶을 무렵 이번에는 계단을 다다다다다닥 하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머리가 쭈삣 다 서며 덜덜 떨고 있었는데, 문을 쾅! 쾅! 쾅! 두드리고 벨을 딩동! 딩동! 딩동! 하고 마구 눌러댔다.

「우우! 우우!」하는, 놈의 울부짖는 듯한 신음소리도 들렸다.

나의 심장은 잠시 가늘게 뛰다가 곧 엄청난 기세로 맥박쳤다.
한층 더 떨며 숨을 죽이고 있자, 수십초 정도 그렇게 시끄럽게 난리를 피우던 문과 벨소리도 그치고, 다시 조용한 상태로...

해가 뜰 때까지 나는 다리미를 손에 꽉 쥔 상태로 굳어있었다.

그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Posted by 리라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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