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05 할아버지가 먹은 것 23
  2. 2009.10.31 소문의 무서움 9

나의 할아버지는, 손녀인 내가 봐도 신사적인 분이셨다. 그러나 할머니 말에 따르면 전쟁에 징병되어 다녀온 이후로 많이 바뀌신 것이라고 했다.

술 담배를 일체 하지 않고, 도박이나 여색도 밝히지 않고 채식주의로 식습관도 변경. 그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후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셨다.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아마도 생활이 완전히 바뀔 정도의 지옥을 보고 오셨던 탓이리라. 할아버지는 전우의 이름을 새긴 위패 같은 것을 항상 집안에 모셔놓은 불단에 바치고 열심히 기도를 올리곤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였지만 80대 중반 무렵 치매 증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이른 아침, 큰 소리로「하낫, 둘! 하낫, 둘!」하고 구령을 붙이며 상반신을 벗은 채 집 주변을 달렸다. 그게 처음으로 기억한다.

어떤 때에는 낮에 싸이렌을 울리며「공습경보! 공습경보! 대피, 대피!」하고 집안을 떠들며 돌아다녔다. 어느 날 밤에는「등화관제! 소등, 소등!」하면서 집안의 불을 모조리 꺼버리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당시 그때는 엄청 놀라셨다고. 아무래도 그 증상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전쟁 당시의 행동 같았다. 예전의 할아버지의 온화함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큰 쇼크였지만, 그럼에도 집을 잃어버리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다만, 아들과 함께 내가 저녁식사를 친정에서 같이 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메뉴는 스키야키.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고기 요리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가족이 먹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한 적도 없었다. 함께 식사는 하지만 고기에 손은 대지 않을 뿐.

그때였다.

「너희들, 공양은 올리고 먹고있는거냐!」

갑작스런 큰 소리에, 식탁의 시간은 순간 정지한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투덜투덜 중얼거리며, 냄비에서 한 조각의 고기를 집어들고 입에 넣으셨다. 그리고 힘 없는 목소리로

「이건 어디 고기냐···?」

하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근처 정육점 이름을 말하자

「그런 것을 묻는게 아니야!」

하고 또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피가 쏠렸는지, 할아버지는 두 세번 가볍게 머리를 흔들더니 그대로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어머니가 따라갔지만 잠시 후 돌아왔다. 아무래도 언제나처럼 불단에 가서 기도를 올리시는 것 같았다. 그 후의 식탁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아들은 반 울상이었고.

반년 정도 후, 할아버지는 입원을 하셨고 결국 2년 쯤 후 돌아가셨지만 그 사이에도 몇 번인가 유사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치매 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보면

「뭘 드셨길래?」

라는 것이 자꾸 맘에 걸린다.

전쟁 당시의 정신 상태에 놓인 할아버지
식량이 극도로 부족했던 전쟁 중
공양을 올린 후에 먹는 고기
그리고 위패로 가서 기도

할아버지, 도대체 뭘 드셨습니까?

Posted by 리라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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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이어, 3일 영/불 양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아래와 같은 수수께끼가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무솔리니, 히틀러, 체임벌린, 다라디에(당시 프랑스 수상) 중에서 이기는 것은 누구?

Mussolini,
Hitler,
Chamberlain,
Daladier,
Which
Wins?

정답은, 각 단어의 3번째 글자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Stalin(스탈린)이다.

이 수수께끼가 나올 당시 유럽의 강대국 중에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소련이었다. 그에 따라 독일/이탈리아(그 당시에는 참전하지 않았지만) vs 영국, 프랑스가 싸워 모두가 피폐해지면 혼자 남아있던 소련이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예상에서 나온 농담이다. 그리고 약간 과정은 다를지언정(소련도 참전), 결과는 그 농담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물론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룬 나라는 소련이지만, 반대로 가장 큰 (정치적) 이익을 챙긴 것도 소련이었기 때문이다.


세간에 떠도는 가십성 루머나 소문이 뜻밖에 현실로 나타난 일은 의외로 많다. 연예계의 무수한 뜬소문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이 되어 뉴스거리가 되는가 하면, 위험하다 위험하다 하며 경계의 목소리가 돌던 회사가 어느 날 그 어떤 실체적 위험조짐도 없다가 갑자기 정말로 붕괴하는 증권가의 루머에 이르기까지.

물론 이는 점쟁이의 예언처럼 '무수히 많은 루머 중 하나가 우연히 들어맞은 것 뿐' 혹은 '루머가 돌고 돌아 마치 사실인 양 퍼지고 그것이 결국 현실에 영향을 끼쳐 진실로 그렇게 되는(루머에 의해 자금줄이 막히는 등)' 경우도 있지만, 의외로 소문은 그 어떤 예측보다도 냉철한 분석을 담고 있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정치가, 책략가 사이에서는 어린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의미심장한 노래나 사람들 사이의 소문에 '천심이 담겨있다' 하여 주의깊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반대로 그런 소문의 영향력을 노려 의도적으로 악의에 찬 루머를 유포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현대전에서도 스파이 전략의 일부로서 실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위의 조크처럼 단순히 유행하는 우스개소리이지만 그 안에 뼈 있는 주의당부의 말이 섞여있는 경우도 있다. 해방 이후 신탁통치와 6.25를 앞두고 한반도에서 유행했던 '미국놈들 믿지 마라, 소련놈에 속지 마라'도 어떤 앞을 크게 내다본 유행어가 아닐 수 없다.

어떤 뼈있는 내용이 '유행'한다는 자체가 민심을 반영한다는 것이며 민심이란 곧 무수히 많은 대중의 견해를 뜻하고, 그 많은 이들 사이에서 유행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결코 무시못할 내용으로 공감과 우려를 자아낸다고 소리이니, 모두가 한번쯤 뼈 있는 소문이나 루머는 주의깊게 생각할 일이다.
Posted by 리라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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